여행을 다녀왔다. (싱가폴-1)

출국 전날 아빠에게 여행을 다녀오겠노라고 말씀드렸다.
아빠는 별 말씀 없이 300달러를 주셨다. 
아빠가 주시는 돈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3만 달러같은 300달러였다.
이 돈은 절대로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지켰다.)
이 돈에 손을 대면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출국 당일 아침에 부랴부랴 짐을 싸고 은행에 가서 환전했다. 
출국 두 시간 전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고 
모든 것이 너무 급하게 진행되었지만 다행히도 크게 어긋나거나 빼먹은 것은 없었다. 
출국 수속을 마친 후에야 마음을 조금 놓을 수 있었다. 

아시아나 항공을 탔다. 
승무원들은 예뻤지만 특유의 싸늘함이 있었다. 
국내 항공사 승무원들은 날이 서 있다. 진상들에게 많이 데여서 그런 거겠지만
승객 입장에서는 참 불편하다. 
이후에 타이 라이언 항공을 탔을 때는 이런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태국 저가 항공사임에도 불구하고 승무원들은 인간적으로 따스하고 친절하였다. 
국내 승무원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한국에서 서비스 산업에서 잠깐이라도 일해봤던 사람들 (특히 여자들)은 알 것이다. 얼마나 한국에 남녀노소를 불문한 진상이 많고 그들이 정신적으로 괴롭히는지를. 그래서 그렇게 날선 태도로 서비스하게 된 거겠지. 
원인이 어쨌건 이런 싸늘한 태도는 참 불편하다. 비싼 돈 주고 탔는데 마음이 전혀 편하지 않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국내 항공사를 피하게 된다. 

내 옆에 앉은 남자는 괜찮은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지독한 냄새가 났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역한 냄새라 고개를 한참 돌리고 있어야 했다. 그 옆은 아줌마 일행 2명이었는데 으레 한국 아줌마들이 그러하듯이 서로 은근한 자랑과 자기 과시를 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 앉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두 번에 걸친 기내식을 먹은 후 
히든 피겨스를 봤다. 돈 내는 게 아니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ㅜㅜ 더 빨리 봤으면 결말까지 볼 수 있었을 텐데 ㅜㅜ 돈 내는 건 줄 알고 지레 쫄았다.

히든 피겨스는 감동적인 내용이었다. 몇 번이나 눈물을 훔쳤다. 
반짝이는 재능을 가진 그녀들이 인종 차별, 남녀 차별을 딛고 위대한 역사를 쓰는 이야기다. 그 바쁜(?)와중에 일도 사랑도 성공한다. 차별은 그녀들 성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녀들은 대단하다.

그녀들처럼 재능도 없고 뭐 하나 잘하는 것도 없으면서
싱가폴 가는 길에 그 영화를 보게 된 것이  운명이 아닐까
그녀들처럼 성공하게 되리라는 신의 sign이 아닐까 또 망상을 한다. 

드디어 싱가폴 창이공항에 도착했다.
처음 왔지만 창이공항, 나는 너를 10년 전부터 알고 있었어.
<싱가포르 너는 사랑이다>는 책에 나와 있었거든. 그 책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으면서
언젠가 너를 만나게 될 거라고 꿈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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