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녀왔다. (프롤로그)

여행을 다녀왔다.
너무나 살고 싶은 도시인 싱가폴과
꼭 한번 놀러가보고 싶었던 도시 방콕.

지난 봄 이후로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였다.
시간이 지나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고
자주 악몽을 꾸었다.
악몽을 꾸고 나면 내 무의식에 그들이 아직도 크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에 기분이 다운되고
스스로의 자존감에 또 한번 실망하곤 했다.

내 인생이 대부분 그래왔듯
하루하루를 대충 흘려보내고 그에 비례하여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이 커져가고 있을 무렵
작은 이슈가 생겼다.
곧 일어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고
이 일은 나를 더 감정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했다.(이것도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로 겪어보니 배는 힘들었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직장도 없고 먹고 살 재주도 없다.
남편도 없고 결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십대 소녀마냥 짝사랑에 빠져있는데
그와 나의 상황을 비교할수록 나는 점점 더 괴로워진다.
이렇게까지 한심한 인생을 살아왔던 것인가.
지난 인생을 찬찬히 돌아보기도 무서웠다.

어느 날 즉흥적으로 M양에게 전화했다. 오늘 만나 달라고.
많이 당황스러웠을 텐데도 착한 그녀는 선뜻 나를 만나 주었고
나는 그녀와 이야기하며 쌓였던 감정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무례하다는 걸 안다.
갑자기 불러내서 나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엉엉 울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그녀가 아니면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ㅜㅜ

그녀에게 말했다. 10월에 스페인 여행을 갈 거라고.
말하고 나니 갑자기 빨리 떠나고 싶어졌다. 당장 2주 후에 가고 싶어졌다.

여행 계획을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이 스페인 여행은 결사반대하셨다.
지구 반대편이라 너무 멀고, 내 상태가 걱정된다고 하셨다.
며칠을 대치 상태로 있다가
스페인 대신 싱가폴로 가겠노라고 했다.

부모의 걱정이 첫 번째 이유였고
금전적인 부담이 두 번째 이유였다.
고정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적금을 해지하는 것은
내가 아무리 막가는 인간이라고 해도 겁이 났다.

싱가폴도 나쁘지 않았다.
싱가폴은 10년 전부터 내가 꿈꿔왔던 도시였다.
언젠가 싱가폴에 가서 일할 거라고
다양한 국적의 남자들과 연애하고 쿨한 일상을 살 거라고 믿어왔다.

드디어 싱가폴을 가는 것이다.
2~3년 후 내가 살러 갈 나라로 사전답사를 가는 거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옆 나라 태국도 잠깐 들르기로 했다.
싱가폴 직항 편이 비싸기도 했거니와
나의 여행 리스트에 방콕을 추가하고 싶었다.

당장 다음주 수요일에 출국하기로 했다.
한국에 있어봤자 나 자신의 감정에 빠져 시간 낭비만 할 뿐이니까.

출국 비행기는 여행 3일 전에 예약했고
숙소는 이틀 전에,
여행 루트는 출국 당일 새벽 4시까지 짰다.
그나마 방콕 여행 루트는 손도 못댔지만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방콕 서점 여행기>를 보고 그대로 다녀오기로 했다.

댓글

가장 많이 본 글